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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ce 2021-10-26

지붕 잘라 나무를 살린 쉼의 공간, 잔월

2021 제주건축문화대상 대상 수상작.

장소잔월 (제주도 제주시 한림읍 명월로2길 11)

제주 공항에서 내려 남서향으로 차를 달린다. 일주서로, 중산간서로를 거치면 논길. 다시 팽나무 숲길 옆으로 접어든다. 길과 풀밭 외엔 무엇도 없는, 마치 시력검사용 도식같은 풍경. 그 끝에 수풀과 지붕들이 듬성하게 이웃한 명월리 고을이 있다. 나직한 돌담에 난 나무 문을 열고 징검다리 위를 걸어가면 제뜻대로 구불구불 자라난 나뭇가지와 그 사이로 길게 얹은 지붕이 나타난다. 아래로는 채우거나 비운 공간이 여럿이고 앞으로 대청이 널따랗게 나 있다. 뻐근해진 몸을 움직여 기지개를 켜고 가만 걸터앉아 본다. 2021 제주건축문화대상 준공건축물 부문 대상 수상작, ‘잔월’에 이르는 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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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와 실내 사이 여유를 주는 외부 공간.

 

잔월은 제주시 한림읍 명월리에 위치한 디자인 스테이다. 광고 감독으로 활동하는 형제인 건축주와 감각적인 건축・브랜딩으로 이름난 지랩, 48년 경력의 목수 서기열 작가, 한지사와 소창으로 공예와 디자인을 오가는 고소미 작가가 한몸같은 공간 경험을 만들어냈다. 길다란 대지의 모양대로 뻗은 지붕은 거실과 부엌, 침실이 위치한 마스터 베드룸과 침대를 배치한 독채, 그리고 정원을 품은 스파까지 세 가지 공간을 품는다. 공간 사이의 틈으로는 초목이 연결되고 사람이 나고 든다.

 

건물 한중간에 배치한 넉넉한 대청. 노경록 대표는 이곳에 앉아 펼쳐진 광경을 바라보길 권했다. Ⓒ designpress

 

나뭇가지 피해 지붕 도려낸 공존의 건축

제주의 쉼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을 그리던 건축주는 건축사무소 지랩(Z_Lab)을 찾았다. 오래된 식당을 펜션으로 탈바꿈한 제로플레이스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탄탄한 기획과 브랜딩을 거친 공간들을 건축해온 곳이다. 눈먼고래, 조천마실, 와온 등 손꼽히는 제주의 디자인 스테이가 이들의 손을 거쳤다.

 

“수풀이 우거지고 돌덩이도 굉장히 많이 깔려 있던 땅이었어요. 요점은 이거예요. 무작위로 자라난 나무들 하나하나를 어떻게 바라보게 할 것이냐. 실측을 수없이 했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지붕의 영역으로 가지들이 조금씩 들어와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지 하나 정도는 잘라내는 일이 생길 수 있겠다 전했지요. 그런데 외려 건축주가 ‘가지 하나도 안 잘렸으면 좋겠다’ 하세요. 결국 지붕을 잘라냈습니다. (웃음)”

 

나무를 위해 지붕과 처마가 물러선 부분. Ⓒ designpress

 

이 땅에 가장 오래 있었던 것은 나무

 

“이 땅에 가장 오래 있었던 건 사실 그 나무인 거잖아요. 우리가 상대적으로 다른 사무소보다 많이 시도해 왔던 리모델링 프로젝트의 관점으로 접근했습니다. 시간이 축적되어 있는 요소들은 없애는 건 순식간이지만 다시 만들어내려면 너무 긴 시간이 듭니다. 그래서 항상 ‘어디까지 남기고 어디까지 없애야 하나’를 고민하거든요.” 건축가의 고민이 무색하지 않게 건축주는 현장을 찾은 기자에게 나무를 피해 잘라낸 곳곳의 지붕부터 보여주었다.

 

 

잔월이 머무는 동네,

명월리 자연에서 착안한 공간 경험

 

잔월이란 이름은 명월리란 지명에 포함된 달과 동네가 지닌 잔잔한 정취를 합한 것. 달과 잔상이란 모티프는 아이덴티티 디자인으로 이어진다. 자연스런 텍스처를 살린 획이 공간의 이름을 형상화한다. 그 아래 청풍명월이란 네 가지 요소는 예로부터 맑은 바람과 밝은 달로 이름난 고장의 이야기를 담고 이를 다시 공간의 경험과 연결한다. ‘청’은 다실의 찻잔에 남은 차의 모습, ‘풍’은 방과 방 사이 공간을 지나는 바람과 향의 형상, ‘명’은 고소미 작가의 조명으로 표현한 달의 형태, ‘월’은 달빛을 받은 노천탕의 잔잔한 수면을 뜻한다.

 

박중현 대표가 잔월에서 손꼽는 장면은 스파 앞 나무 벤치가 놓여 있는 풍경. 박중현 대표는 공간의 스타일링을 주도한다. 건축이 마무리된 후 사용자의 감각에 가장 먼저 와 닿는 디테일을 매만지는 작업. 나무 사이로 보일 듯 말 듯한 공간이 매력적인 장면을 만든다.

 

결 넓히는 작가와의 협업

빈틈 없는 가구와 한국 미감 담은 소품

 

건축주가 떠올린 잔월의 키워드는 연결이다. “하나의 지붕 아래 연결된 세 가지 공간이 있어요. 이곳에서 자연과 건축, 나무와 지붕, 6인 숙소인 만큼 가족과 가족도 연결되겠지요. 어떤 형태로든 연결됨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합니다.”

 

마스터 베드룸
다실에는 '지승민의 공기' 테이블웨어가 놓였다.

 

가장 바깥 쪽에 위치한 공간은 마스터 베드룸. 천창이 난 다실과 부엌, 다이닝 테이블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침실은 화장실이 있는 통로를 지나 진입할 수 있다. 통로의 창문으로는 거목의 가지가 갈라진 모습이 엽서처럼 비친다. 공간에 무게감을 더하는 것은 서기열 작가의 목가구. 먹먹한 색채가 인상적인 가구의 수종은 아프리카 콩고에서 온 웬지 나무로, 예순을 넘긴 작가는 만만치 않은 강도를 지닌 이국의 나무를 다듬어 이런 장면을 만들었다. 지랩 박중현 대표와 작가는 계절과 습도에 상관 없이 상판과 다리가 완전한 직각을 이루는 테이블을 만들기 위해 상판과 다리를 느슨히 띄운 디자인을 고안했다. 양쪽에 놓인 의자 역시 테이블 아래로 넣으면 마주 보는 좌판이 맞물리며 외부로 튀어나온 부분 없이 완전한 직사각형을 이루게 했다.

 

 

Interview 서기열 작가

나무를 만진 지 올해로 48년 째. 17세 때 고전가구 장인 정성룡 선생을 사사해 지금에 이르렀다. 목제 그릇과 식기 등 생활 소품에서 테이블, 장롱까지 그의 작업은 스케일을 가리지 않는다.

 

 

좋은 가구를 만드는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선 좋은 자재를 써야 해요. 맡기는 입장에서는 싸고 좋은 것을 찾잖아요? 하지만 그러려고 하지 않아요. 좋은 것으로 좋은 걸 만드는 거죠. 그래서 최고급 품질의 수종을 씁니다.

 

상판과 다리가 정확히 직각을 이루는 서기열 작가의 웬지목 다이닝 테이블.

 

웬지’라는 특수목을 쓰시죠.

아프리카 콩고가 산지예요. 내 작업의 90퍼센트 이상은 그 수종을 씁니다. 질기고 강하고 일반적으로 제일 고급 나무라 하는, 단단하다는 흑단 있지요. 그것도 써 보았지만 가공해 놓은 걸 보면 웬지는 그것보다도 질기고 강하거든요.

 

 

어떤 마음으로 가구를 만드십니까.

내가 원하는 걸 만드는 성취감도 있어요. 하지만 지랩이든 어디든 나한테 백만 원 짜리를 만들어 달라고 하면 난 이백만 원 짜리를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더 나은 값어치의 것을 만들려고 해요. 내 양심이 그렇게 하라고 합니다. 그게 내 신념이에요. 주위에서는 너무 퍼준다고 하는데, 퍼 줘도 살림살이는 늘어나더라고. (웃음) 재밌게 잘 하고 있어요.

 

Interview with 고소미 작가

한지와 텍스타일을 기반으로 한 설치미술가. 부산대학교 한국화 전공 학사, 일본 무사시노 미술대학에서 조형예술학 석・박사 과정을 거쳐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인사아트센터, 신주쿠리빙디자인센터, 가고시마 화이트 갤러리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2019년 청주공예비엔날레 국제공예공모전 파이널리스트에 올랐다.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소미당’을 운영하며 부산대학교 조형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마스터 베드룸의 다이닝 테이블 위 조명 펜던트는 그 소재를 가늠하기 힘들다. 솜을 꼬아 놓은 듯도 하고 희게 칠한 금속같기도 한데, 원재료는 바로 한지다. 한지사를 다루는 설치미술가 고소미 작가의 대표작인 ‘다양체’에 조명의 쓰임을 부여한 것. 2000년대 중반 시작된 작가의 다양체 연작은 길쭉하게 자른 한지를 물레에 돌려 실로 만들고 베틀에 직조한 뒤 입체 틀에 매감는 과정을 거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형상화하고자 했던 작가는 바람의 입자를 표현하기 위해 공중에 띄울 수 있는 구조를 고안해 한지사를 고치처럼 감았다고. 오랜 지인인 건축주가 내부에 광원을 넣어 보자 제안해 잔월에 놓인 작품은 조명의 기능을 갖게 됐다.

고소미 작가가 닥종이를 세 겹 겹치고 옻칠을 더해 만든 한지 커튼. 한옥 창호의 격자를 연상하게 하는 시접선이 은은한 음영을 만든다.

 

공간을 둘러싼 통창을 가리고 또 열어주는 커튼 역시 한지로 만들었다. 세 겹의 닥종이를 줌치* 기법으로 붙였고 오염이 생기면 행주로 쉽게 닦아낼 수 있도록 옻칠을 더했다. 한지와 한지를 연결하며 생기는 시접선은 한국 창호에서 보이는 사각 격자를 이루도록 디자인했다.

 
*한지를 물 속에서 비벼 섬유가 엉키게 해 한 장으로 만드는 기법.

 

 

열고 닫을 수 있는 한지 커튼은 처음 봅니다.

일본에서 수학할 당시 일본의 닥지 커튼과 비교해 한지 커튼을 연구했습니다. 당시 두 겹의 한지로 여러 번 테스트도 해 보고 작품을 제작하기도 했죠. 그런데 한국에 와 한지 커튼을 이야기하니 ‘찢어지지 않냐’는 질문만 잔뜩 받았어요. (웃음) 한지가 세계적으로 보아도 질긴 소재인 건 알지만 커튼은 낯설었던 거지요. 사실 어떤 섬유든 강한 힘으로 당기면 찢어집니다. 요즘 대부분의 커튼을 만드는 폴리에스테르도 마찬가지예요. 그래도 내구성을 보강해 세 겹으로 만든 커튼은 찢어지진 않았지만 몇 차례 시행착오를 거쳤어요. 날씨에 따라 수축하면서 예상과 다른 사이즈가 나오기도 하고요. 종이에 홍두깨를 두들겨 압축도를 높이는 도침 기법으로 수축 현상을 막을 수 있었지요.

소창 수건과 가운이 놓인 사우나.

 

소창으로 만든 목욕 가운 역시 새로운 시도이지요.

유학할 때 온천에 가면 끝나고 나서 유카타를 입는 게 참 부러웠습니다. 우리나라에선 루프 상태의 타올지 혹은 리넨으로 만든 목욕 가운을 입잖아요. 우리에게는 소창이란 좋은 재료가 있는데 그것으로 목욕 용품을 만들 생각을 왜 못했을까 싶었어요. 하지만 막상 시도해 보니 섬유의 짜임이 느슨해 일반적인 박음질이 모두 풀어졌습니다. 그래서 패턴과 재봉 방식을 모두 새로 고안했어요. 입체 패턴의 서양 복식이 아닌 평면을 취하는 한복의 패턴을 가져왔어요. 국내 한복 작가들과 협업하는 일이 잦아 익숙했고, 직선으로 최소한의 재단선을 만들었습니다. 여기 원단 두 겹의 시접을 잡아 재봉한 후 그걸 뒤집어 다시 한번 박음질을 해주니 올풀림이 없어졌어요. 몸에 닿는 부분에 시접이 없다 보니 착용감도 나아졌고요. ‘만들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지요.

완전한 침실로 쓰이는 별채.
탕 앞으로 이어진 별도의 정원이 있다.

 

대지 중간에 자라난 나무를 배려한 외부 공간을 거치면 침실로 쓰이는 별채에 닿는다. 두 벽면을 할애한 통창과 천창으로 외부 풍경을 방 안 가득 담는다. 다시 한 번 외부 공간을 지나 마주하는 공간은 노천탕과 사우나로 이루어진 스파. 노천탕 앞에는 그림처럼 식재된 정원이 있다. 전체 조경은 제주를 기반으로 한 보림조경이 맡았다. 건축주가 제주에서 직접 수소문해 찾아낸 파트너다.

“잔월의 건축처럼 단정하고 정갈한 조경을 생각했습니다. 식재하는 식물의 종류를 최소화하길 원했어요. 물론 스파 조경은 어떤 형태로든 시선을 잡아두길 바랐습니다. 보림조경에서는 입구에 그라스 종류의 식물을 식재해 외부와는 다른 공간으로 들어오는 느낌을 주었는데요. 처음에는 허전한 느낌도 있었지만 가을이 되니 식물의 색이 지붕과 유사하게 바뀌어 생각지도 못했던 장면이 만들어졌습니다. 스파 내부 조경은 콘크리트 구조가 다 지어진 후 모두가 허리를 숙여가며 완성했어요. 문을 열고 들어서는 모두를 놀라게 하는 곳이 되었지요. 투박한 제주 아저씨의 손에서 이렇게 섬세한 조경이 만들어졌습니다. (웃음)”

 

담과 지붕이 나란히 수평선을 만드는 풍경. 그 너머의 나무가 드라마틱하게 펼쳐지는 장면은 지랩 노경록 대표가 건물의 덩어리를 설정하며 가장 중요하게 보았던 구조다.

 

주택과 숙박시설 사이,

디자인 스테이 변주하는 지랩의 건축

 

미술을 전공한 영상 감독인 건축주, 관록 짙은 공예가, 수십 년의 경력을 지닌 시공사와 조경 회사… 이들을 한데 아우르는 그림이 이렇게 그려졌다. 잔월의 건축과 스타일링, 브랜딩을 맡은 지랩은 직접 운영하는 디자인 스테이 플랫폼인 스테이폴리오를 통해 프로모션과 예약까지 관장한다. 그간의 작업으로 지랩-스테이폴리오의 팬덤은 꽤나 두텁다. 디자인 스테이를 대하는 이들만의 방식이 궁금했다.

 

 

국내에서 디자인 스테이,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창작 집단이지요. 스테이폴리오 론칭 후 6년이 지났고요. 그간 숙박 시장, 관객의 변화도 있었을까요?

주택과 숙박 시설 사이 딱 중간 정도에 있는 형태, 평면, 경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숙박 시설이라고 하면 불편하고 말이 안될 수 있고, 주택에서도 하지 못하는 것들을 더 할 수 있는 거죠. 호텔이나 리조트가 아닌 낡은 주택을 리모델링하는 작업으로 시작했다는 것도 조금 다른 시각을 가질 수 있었던 또다른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디자인을 계속하고 있고 프로젝트를 거듭하면서 조금씩 발전하는 것들이 느껴져요.

 

툇마루.

 

숙박시설과 주택 사이의 경험이라면?

조천댁 프로젝트에서 처음 신발을 신고 들어가는 실내를 만들었어요. 마당을 지나 그대로 신발을 신고 주방으로 가게 되거든요. 집 안에서 신발을 신고 생활하는 것은 꽤 새로운 일이죠. 잔월에서는 서로 떨어진 세 곳의 공간과 그만큼의 외부 공간, 중앙에 널찍하게 펼쳐진 대청이 있습니다. 공간 사이를 이동할 때 신발을 갈아 신게 되고, 눈이나 비가 오면 불편할 수 있어요. 확실히 불편할 겁니다. (웃음) 하지만 이런 것이야말로 도시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여행지의 경험이에요. 시골집에 가면 현관이라는 것 자체가 없는 곳이 많아요. 제주 돌집은 몇 채 이상의 조합으로 되어 있는 곳이 대부분이고요. 그런 경험 위에서 마당, 분리된 공간이 자연스럽게 구성되는 거지요.

잔월에는 서로 떨어진 세 곳의 공간과 그만큼의 외부 공간, 중앙에 널찍하게 펼쳐진 대청이 있는데요. 이 공간을 모두 메웠다면 더 큰 실내를 만들 수 있었을 겁니다. 천정고를 더 높일 수도 있었을 거고요. 하지만 주변 지역과 ‘청풍명월’을 주제로 한 공간의 이야기에 집중해서 여러가지를 절제한 거지요.

 

 

건축 | Z_Lab

Principal Designer 노경록, 박중현, 강해천
Project Manager 서준혁
Brand Designer 김기수

협업 파트너

시공 진용
조명 고소미 작가
가구 서기열 작가
패브릭 소미당
조경 보림조경
세라믹 테이블웨어 지승민의 공기
사진 잔월

 

 

유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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