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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ce 2021-11-23

4평짜리 실험 서점, 로프트북스

부암동 주택에 들어선 책과 시선들.

장소로프트북스 (서울시 종로구 창의문로 129 2F)

실험 서점. 북큐레이터 조성은은 자신의 서점 로프트 북스를 이렇게 설명한다. 부암동 주택 2층에 자리한 4평 남짓의 서점은 지금 펄떡이는 디자인과 문학, 음악, 요리, 과학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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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암동 251-4번지 2층. 우측 창문 안이 로프트북스다. Ⓒ Mijin Yoo
Ⓒ Mijin Yoo

 

밀도 높은 지식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맥락. 냇물처럼 굽이치는 평대와 두 벽의 서가에서는 킨포크 매거진이 제프 쿤스로, 야나기 무네요시가 샬롯 페리앙으로 이어진다. 얼기설기 놓인 듯하지만 무릇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된 책의 타래. 서점을 찾은 이들은 그 지도 안에서 한참을 서성이며 제 보물을 찾기에 바쁘다. 그는 출판 시장을 두고 푸념하거나 “서점 하지 마세요”라 말하지 않는다. 조성은의 로프트북스처럼 당신의 ‘ㅇㅇ서점’을 만들어 달라 청한다. 산업이나 판매량의 이야기가 아니다.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시각을 기다리는 마음이다.

 

우측 벽을 채우는 디자인・건축 서가. 매일 조금씩 변경되며 확장한다. Ⓒ Mijin Yoo
'무인양품'에서 시작한 사고의 얼개. Ⓒ Mijin Yoo

 

큐레이션이란 말이 범람하는 시대에 로프트북스의 큐레이션은 최신 이슈로부터 시작해 보다 넓은 폭으로, 긴 타임라인으로 확장한다. 출판계를 넘어 세상에서 일어나는 흥미로운 일이라면 그 무엇이든 서가의 재료가 된다. 책방 전체가 하나의 매력적인 지면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화제가 된 드니 빌뇌브의 영화 <듄>에서 시작한 큐레이션은 소설가 김초엽의 SF 신간으로 이어진다. 신간 뒤에는 작가의 전작이 놓여 있고, 옆으로는 관련 주제를 다룬 책이 꼬리를 문다. 평대 위에 너다섯 권의 책이 겹쳐 놓이는 이유다.

 

조성은 대표. Ⓒ Mijin Yoo
신간 코너. 신간 아래를 들춰 보면 맥락상 이어지는 구간을 만나기도 한다. Ⓒ Mijin Yoo

 

“처음부터 끝까지 비선형적 독서를 하는 편입니다. 같은 저자의 책이나 비슷한 주제의 책 두세 권 사이를 오가면서 읽어요. 집중력이 쉽게 떨어지지 않아 한 권만 읽을 때보다 금방 읽을 수 있습니다. 독서를 마쳤을 땐 두세 권을 모두 읽은 게 되고요. (웃음)”

조성은 대표는 행정학을 전공하고 쌈지의 문화 공간 기획을 거쳐 패션 브랜드의 마케터, 교보문고에서 ‘구서재’, ‘삼환재’ 등의 공간 기획과 오프라인 MD를 맡았다. 이때 교보문고 향수와 작가 커피를 기획하기도 했다. 이후 AA디자인뮤지엄에서 서가 기획 작업을 이끌다 ‘레이어스랩’으로 독립해 북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레스케이프 호텔, 교보문고 등이 그의 손을 빌리는 곳들. 이처럼 흩어진 점처럼 보이는 이력은 공간과 책이라는 맥락 아래 매끄러운 곡선으로 연결된다. 꼭 이곳의 벽면을 따라 흐르는 비선형의 평대처럼.

 

주제에 따른 책이 꼬리를 무는 후면 서가. 킨포크 매거진과 제프 쿤스, 앤디 워홀을 연결하는 키워드는 자본주의. 트렌드 코리아 뒤에는 내년 트렌드를 다루는 다른 책을 함께 둔다. 사고의 과정을 따르는 책의 배치. 살피다 보면 함께 구매하게 된다. Ⓒ Mijin Yoo

 

4평의 서점은 전면과 좌측 창가 아래의 낮은 곡선 평대와 이케아 벤치를 활용한 직선 평대, 우측과 후면 벽의 서가로 구성된다. 차례로 최신간, 시즌에 따른 큐레이션, 디자인・건축, 그 외 주제별 큐레이션이 자리한다. 모든 서가는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주 간격으로 바뀐다. 특히 최신간의 경우 출판사의 직접 공급으로 대형 서점을 앞지를 때가 많다. 작은 서점에서는 속도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선입견을 생각해 부지런히 움직인 결과다. 원형 스티커가 붙은 책은 절판된 책이거나 조성은 대표가 독서한 흔적이 남아 있는 책. 판매는 하지 않지만 큐레이션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위해 함께 둔다.

시냇물처럼 굽이치는 서가는 직접 디자인해 방산시장의 목공소에서 만든 것. 디지털 도면 대신 A4용지를 잘라 실제 모양을 만들어 의뢰했다. Ⓒ designpress

 

공간의 규모도, 구성도 일반적이지 않은 서점은 어떻게 디자인됐을까. “다른 모습의 서점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생각했어요. 서점에서 일하면서 시간이 허락해줄 때마다 자비를 들여 일본의 다양한 서점을 찾았습니다. 이곳보다 작은 한 평짜리 서점도, 이를테면 정치 관련 서적만 들여놓은 서점도 있었죠. 규모와 내용은 달랐지만 하나같이 그 특색이 분명했습니다. 그런 서점을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해 왔고, 지금의 공간을 알게 되어 실행에 옮기게 된 거지요.”

 

큐레이션을 위해 한켠에 쌓아둔 책들. Ⓒ Mijin Yoo

 

큐레이션에 더해 작은 서점을 풍부하게 채우는 또다른 것은 열린 기획이다. “교보문고에서 작가와의 만남 프로그램을 준비하면서 귀한 만남이 많았습니다. 로프트북스에서도 도슨트를 제공하면서 독자들과 매일 재미있는 대화를 나누고 있고요.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기획이 시작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일례로 조성은 대표가 밑줄을 치며 읽은 책을 구매하길 원하는 고객들이 늘면서 명사가 읽은 책을 판매하는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고.

날이 저무는 시간 서점 풍경. Ⓒ Mijin Yoo

 

서점과 책을 이야기할 때면 빠지지 않는 매출에 관해 물었다. 조금 다른 이야기가 돌아왔다. “책이 팔리지 않는 시대라는 말보다는 어떤 제안을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봐요. 서점에서 MD로 일할 때 매일 책상 위에 새로운 책이 한가득 있었어요. 책 무덤 속에 있는 게 너무 재미있고 신이 났습니다. (웃음) 서점을 한다는 건 이토록 다양한 책의 맥락을 찾아 제시하고, 책을 찾아 모이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에요. 그 맥락은 고르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띨 테고요. 각계에서 오랜 시간 활동해오신 분들께 그 궤적을 따르는 서점을 열어 보시라 추천하는 이유입니다. 저 역시 그런 서점들을 기다리고 있어요.”

 

유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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